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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이날. 
하지만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날뿐 아니라 어린이라는 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창해 1923년 5월 1일 서울에서 첫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날은 1921년 5월 1일, 소파 선생이 주축이 된 ‘천도교 소년회’에서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표어 아래 처음으로 소년운동을 시작한 지 정확히 2년째
되는 날이었다. 소파 선생은 천도교 어린이뿐 아니라 조선의 모든 어린이가 이 날만큼은
존경받고 즐겁게 보내라는 의미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했던 것이다.
해마다 5월 1일 거행된 어린이날 행사는 1927년부터 5월 첫 일요일에 개최되다 193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금지됐다. 하지만 어린이날은 소파 선생의 숭고한 정신으로 살아남아
그 명맥이 유지되어 오다가 광복 후 1946년 5월 5일 다시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렸으며
건국준비위원회는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1957년 2월에는 한국 동화작가협회의 이름으로 7명이 모여 성문한 어린이 헌장도 제정되었다.
헌장 전문에는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고 적혀 있다.
어린이라는 말도 소파 선생이 처음 창안해 사용했다.
‘어른’에 대한 대칭어로 쓰여 온 ‘아이’라는 말이 어린이를 비하해 부르는 듯한 어감이 짙게 풍기는 반면
‘어린이’는 ‘젊은이’ ‘늙은이’와 대칭되는 표현으로 ‘어린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여러모로 애쓰셨다.
어린이를 위한 노래와 동화도 많이 지어 보급 하셨고 어린이들을 건전하게 기르자고 외치셨다.
왜냐하면 자라나는 어린이가 훗날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 운동을 벌이실 때에는 우리 나라가 일본의 압박 속에서 어른들은
일본 경찰과 헌병의 눈을 피해가며 나라 찾는 독립운동에 여념이 없을 때라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돌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나라 잃은 우리 어린이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못 배우고
천대받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이럴 때 소파 선생님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이를 올바르게
기르는 길이 바로 잃은 나라를 되찾는 빠른 길이라
굳게 믿으시고 어린이 운동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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